다시개벽 제1호 편집후기

글: 조성환, 성민교

“다시 젊은, 다시청춘”을 위하여

우연히 페이스 북에서 백낙청 선생의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로런스를 개벽사상가로 규정하는 글은 이전에도 읽은 적이 있지만 설마 책 제목에까지 넣으실 줄은 몰랐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백낙청을 ‘한국학자’로 평가하는 이유이다. 그의 전공은 영문학이지만 그에게는 ‘한국’이라는 시점이 살아 있다. 『다시개벽』의 지향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구한말의 척사파처럼 서양을 무조건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관점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수용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한 자기 것이 될 수 있고, 신문화 창조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100년 전에 『개벽』을 주도한 이돈화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인문학계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영어논문 평가, 서양이론 학습, 서양철학 추종, 서양학자 초빙 등등, 온통 서양의 노예가 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는 중화에 중독되었던 조선 시대와 다를 바 없다. 아니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조선은 퇴계, 율곡, 다산, 혜강과 같은 걸출한 사상가들을 배출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하면 이 퇴보를 진보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이 문제의식 하나로 20~30대의 젊은이들이 뭉쳤다(나는 이들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아미’의 입장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다시개벽』은 ‘다시젊음’이나 ‘다시청춘’에 다름 아니다. 과거 80년대의 학생운동이 그랬듯이, 혈기 넘치고 재기 발랄한 청년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 『다시개벽』의 창간 의의이다. 세대가 바뀌지 않으면 한국도 바뀌지 않는다.
조성환


다시 개벽, 죽는 것만이 살 수 있다

두 달 사이 세 번의 죽음을 겪었다. 울어도 울어도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옹이가 있는데 그게 삶에 박혀 있는 죽음의 본성인가 싶다. 엄마는 나보다 똑똑하면서 딸이 철학 전공을 한다고 계속 물어봤다. “민교야, 죽음은 뭘까? 죽으면 어디로 가?” 생명체는 요소들의 세계로부터 합성되어 개별적인 몸을 가지고 태어나며 몸 안에서는 수많은 요소들이 생명 활동을 하고 있다. 의식을 가진 생명체의 경우 몸속에서 탄생하는 의식은 이런 무의식적 요소들을 거의 지각하지 못한 채로 생명의 주인으로서 살아간다. 한 생명체가 죽는다는 것은 행위 주체로서의 그 개별적 의식과 개별적 몸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그 개체로서의 생명 운동이 끝난 것일 뿐, 그 안의 생명적 요소들은 다시 생명의 세계로 돌아간다. 자식을 낳았을 경우엔 유전자가 생명 활동을 이어가고, 땅에 묻혔을 경우엔 다른 생명의 거름이 되어 살아가며, 다른 이의 마음에 묻혔을 경우엔 사유의 씨알로 영원히 자란다. 물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이런 과정으로 이해한다고 해서 슬픔이 가시는 건 아니다. 내가 동경하던 그 생기 어린 눈, 나를 안아주던
그 훈기 어린 체온을 다시 못 느낀다는 것은 의식이 파괴될 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는 의식의 한계를 벗어나 자유로운 생명력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러니 축하와 찬사를 보내야만 한다. 『다시개벽』은 이러한 죽고 다시 태어남에 대한 결단이다. 『다시개벽』은 이미 도래가 정해진 질서를 편안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위로하는 낭만적 유토피아니즘이 아니다. 죽지 않는 것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를
한계 짓고, 병들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문화와의 필사적 결별만이
우리 안의 씨알로서의 생명들을 살리도록 이끈다.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까지도 지배해 온 죽임의 문화를 씻어내어 이전의 우리에 대한 장례를 치르는 일은 많은 눈물을 동반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울고 있는 생명들을 위해, 끝없이 울어 온 생명들을 위해 장송곡을 넘어 축하의 행진곡을 불러주어야 한다. 나로서는 『다시개벽』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글을 써낸 것이 진실로 자아개벽이었다. 사랑하는 이들이 죽어 가고 학위논문도 못 쓰고 있는 압박적 상황 속에서 글을 쓰는 것도 어려웠지만 존경하는 선생님들의 깊고 날카로운 글들을 확인하고 난 뒤 불만족스러운 미완의 글을 싣는 용기를 내는 것이 요 며칠간 가장 힘들었다. 『개벽』 잡지의 역사와 나의 역사에 오점이 될 것 같아 괴로웠다. 그렇지만 필자 소개의 마지막 줄에 이렇게 쓰지 않았는가. “그래도 지껄이는 용기를 내보고 있다”고. 열심히 점을 찍다 보면 한 편의 점묘화가 탄생하겠지. 앞으로도 이곳이 새로운 요소들의 실험실이 되길, 산뜻한 영혼들의 무용실이 되길, 건강한 사유자들의 운동장이 되길 바라며 모두 강녕하시고 다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성민교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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