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민주주의

-코로나를 둘러싼 음모- 빌 게이츠와 가이 포크스, 그리고 이재용 회장

글: 심규한

코로나19를 겪으며 4월 10일 유빌 하라리는 FT 기고문에서 코로나19로 인류가 전체주의와 국제협력으로 가는 기로에 섰음을 경고했다. 미국과 유럽의 언론들은 불투명하고 폐쇄적인 중국의 전체주의적 통제와 대비해 투명하고 개방적인 한국의 민주주의적 통제 방식을 그들이 따라야할 교과서적 사례로 언급하였다. 일부 국가의 언론은 IT 기술을 이용한 한국의 코로나19 환자의 동선 추적 방식과 공개에 대해 인권 침해의 위험이 있다며 의심하기도 하였다. 그들의 동양 사회에 대한 편견도 자리하겠지만, 우리 자신도 군사독재시절의 감시를 겪었기 때문에 주의하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전체주의냐 민주주의냐의 시험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코로나19의 다양한 국면에 대한 대응 정책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체주의적 해결로 폄훼하는 것도 민주주의 희망으로 예찬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의 현실이 그만큼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언론에서는 온라인 개학으로 4차 산업혁명이 앞당겨졌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IT기술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4차 산업혁명을 겪으며 새로운 빅브라더가 등장해 전자 전체주의 사회를 열 것인지, 아니면 시민의 민주역량을 더욱 강화시켜 전자 민주주의 사회를 열 것인지도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세계와 사회는 독재자의 권력과 시민의 힘이라는 두 세력의 혼란한 각축을 피할 수 없다.
이 무렵 빌 게이츠가 2015년 TED에서 한 코로나19의 판데믹을 예견한 강연이 새롭게 조명 받았다. 이미 5년 전 그는 핵무기나 전쟁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는 더 큰 위협이고 우리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경고했다. 영상으로 보면 그는 천재적 사업가일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읽는 혜안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이번 사태를 겪으며 그는 자신의 재산을 투자해 코로나19 백신 계발에 발 벗고 뛰어들었다고 한다. 미국 뿐 아니라 지구의 구세주가 될듯하다. 하지만 2015년에 이미 우한의 바이러스 연구소와 미국 과학자들의 합동 연구로 박쥐에서 쥐로 이식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실험을 실행해 논문을 발표했는데, 새로운 키메라 바이러스의 돌연변이율이 엄청나 백신과 면역시스템 계발에 실패했다는 보고가 담겨 있었다. 빌 게이츠 재단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과연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런 와중에 빌 게이츠와 악연을 이어온 해커집단인 어나니머스는 빌 게이츠의 구속을 요구하고 빌게이츠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우리는 미국의 재벌인 록 펠러와 카네기를 잘 안다. 록 펠러는 석유 재벌이고, 카네기는 철강왕이다. 그들의 노동자 탄압과 독점에 의한 더러운 성공은 말년의 기부와 문화 사업으로 가려지고 그들은 예찬의 대상이 되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듯 그들의 성공담은 자본가들의 이상이 되었다. 빌 게이츠가 추구하는 방식이 이들을 따른다는 것이다. 삼성일가도 그들의 길을 따르고 싶어 할 것이다.
빌게이츠는 이미 오래전부터 헤커들의 공적이다. 인터넷의 초기 창조자들은 처음 인터넷을 공유와 민주주의 공간으로 만들어갔다. 그렇게 인터넷 운영체제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인터넷 운영체제의 아이디어를 강탈하고 독점해 순식간에 세계 재벌이 되었고 인터넷 운영체제 내의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자 기부의 천사가 되고 문화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어쩜 그렇게도 록 펠러와 카네기를 닮았단 말인가?

어나니머스는 20세기 초 미국 광고의 역사도 상기시킨다. 그들 재벌이 쓴 이미지 변신 전술이 1차 2차 세계대전의 프로파간다 기술을 적용하며 발전한 것이라는 건 역사적 사실이다. 소비자본주의를 겪으며 대중은 광고의 선전선동에 쉽게 농락당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증명되고 있듯 프로파간다에 기반한 여론조작에 의한 대중조작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의 보수언론과 일본의 언론은 극우의 프로파간다가 된지 오래다. 재벌이 이러한 프로파간다를 활용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이미지를 쇄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재벌의 선의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어나니머스가 빌 게이츠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 벌어진 일이다. 빌 게이츠도 어나니머스도 배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음모론적인 해석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어나니머스를 지지한다.
이런 와중에 5월 6일 삼성의 이재용 회장은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자청하는 자리에서 경영권의 4세 세습을 포기하고, 삼성의 80년 무노조 원칙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 국정농단, 삼성물산 부당합병, 삼성 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등에 대한 사과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재벌개혁가처럼 말했던 것이다. 언론은 약속이나 한 듯 삼성을 찬양하고 이재용 회장에 동정을 표했다. 재벌세습과 무노조라는 중세적 기업이 한국을 대표하는 인류기업이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해야 했지만, 그런 일은 아직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 경악은 변소 방귀로나 들릴 뿐이었다. 프로파간다 때문이다. 물론 이재용 회장은 어나니머스의 표적은 아니다. 하지만 빌 게이츠와 거리가 멀지 않다.
어나니머스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발적 익명성 때문에 통제가 불가능하다. 그 점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어나니머스는 시민을 대표한다. 그들이 얼굴을 가린 것은 역설적으로 시민을 대변하고 시민의 편에서 싸우기 위해서다. 그들은 아나키즘적 해커들의 핵트비즘으로 대항하지만, 권력자들이 법을 지배한 현실에서 권력과 싸우는 일은 불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의 로고에는 얼굴이 없고, 그들이 화면에 등장하거나 거리로 나설 때는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바로 가이 포크스 가면이다. 가이 포크스는 몰라도 가면은 알 것이다. 가이 포크스는 1605년 영국의회를 폭발하려다 적발된 화약음모 사건으로 처형된 사람이다. 하지만 2005년 제작된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브이의 가면으로 등장한 이후 어나니머스의 상징이 되었다. 이후 홍콩 혁명 등 각종 반체제 운동에서도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절대권력에 대한 봉기를 선동하는 가이 포크스에 대한 입장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문제의식은 동감하리라.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얼굴 없는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와 <메트릭스>를 제작한 워쇼스키 자매의 상상력은 4차 산업혁명에서 벌어질 사태에 대한 징후적 모의실험에 가깝다. 권력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가이 포크스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유빌 하라리의 FT 기고문은 우리에게 안전 공포와 불안 때문에 전체주의에 휩쓸리지 말고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라는 말같이 들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의 프로파간다 너머 진실을 직시하는 사람들의 힘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더 더 진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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