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한 달 넘게 개학이 늦춰지고, 교육부에서는 다시 개학을 연기하며 온라인 개학을 해 진행하고 있다. 갑작스런 온라인 개학에 학교는 학교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교의 입장에서는 교육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고, 교육청은 학교를 관리할 수밖에 없으니 교사와 학생은 어떻게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주어졌다. 그것이 교육적인지 무엇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논의될 여지가 전혀 없었다. 세계가 장기 비상사태니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서 준비하는 것이라는 부질없는 수사학은 거북스럽다. 나는 오히려 교육의 본질을 좀 더 고민하고 거기에 충실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 괘씸죄에 해당하겠지만 나는 이번 기회에 학교를 모두 그만두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주체적 성장을 위해 학교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다.
우리는 작년 두 명의 십대에 주목했다. 17세의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와 23세의 홍콩 청년 조슈아 웡이다. 그레타 툰베리는 환경파괴의 위기를 실존적으로 느끼며 우리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변하며 청소년 기후행동으로 동맹휴학을 이끌며 환경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조슈아 웡은 2013년 17세에 중국 공산당의 애국교육방침에 저항하며 학민사조를 조직해 센트럴 차터가든 점거를 시작으로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 운동의 요구하는 우산혁명을 이끌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이라고, 사회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가만히 공부만 하라던 학창시절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교훈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레타 툰베리와 조슈아 웡은 학생 이전에 그들이 또 우리가 인간이라는 공통의식을 상기시켰다. 그러고 보니 동학혁명 때 소년 장군 김구가 18세였고, 이를 진압하기 위한 병사로 안중근이 참여한 것이 16세였다. 유관순이 3.1 독립만세운동으로 감옥에 갇힌 것이 18세였다. 일제 식민지 기간 벌어진 수많은 학생 운동과 4,19, 5.18의 학생 참여를 떠올리면 10대의 학생 본분이란 그저 교육이데올로기의 세뇌에 지나지 않는다. 백년전쟁을 종식시킨 잔 다르크의 나이는 17세가 아니었는가?
1920년대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 운동은 분명 위협받고 무시당하는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근대의식과 더불어 어린이, 소년, 청소년 이런 말들이 인권을 위해 보급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연령별 호칭이 어느새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족쇄가 사용되었던 것은 아닌가?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선거권이 만 18세 이상으로 조정되어 고3 학생이 투표를 하게 된 최초의 선거가 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고등학생들을 동등한 사회인으로 대우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고등학생은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거권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 시대 10대들의 활약을 보면 청소년들을 학생의 신분으로 구속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유교의 정명론이 통치이데올로기가 되면서 보급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의 계층적 질서의식은 평등 보다 계급사회에 알맞았다. 하지만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말은 꼰대들의 말이다.
한국의 교육문제를 볼 때 수백 번 제도를 고쳐도 근본적 개혁이 불가능한 이유도 바로 당사자인 학생들이 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기득권을 쥔 기성인들이 결정한다. 우리에겐 68혁명이 없었다. 학생들이 교육제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며 학교를 점거하고 방화하고 거부하지 않았다. 오직 공평한 경쟁을 요구할 뿐이었다. 작년 조국 법무장관 입명 당시 학생들의 문제의식은 소위 정당한 경쟁의 요구에 제한됐다. 빈부격차와 학력사회의 근본적 문제 제기가 아니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때 정유라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도 게임의 규칙인 정당한 경쟁을 어겼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정의의 기준을 공정한 경쟁으로 삼는 것은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다. 아무리 시민이 자본주의 산물이래도 공평한 경쟁 이데올로기가 정의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정당한 경쟁 이데올로기는 인간 그 자체를 옹호하기 위해 요구하는 평등이 아니라, 차별을 정당화하고 내면화하기 위해 발명되고 기능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학생들 뿐 아니다. 교사들도 그렇다. 2017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에 대해 전교조 교사들조차 정당한 경쟁 신화를 바탕으로 자격 없음 판정을 비정규직 교사들에게 내렸다. 교사야말로 계급화에 기여하고 있지 않은가? 교사 자신들이 그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내면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교원임용고시는 1991년에 생겼다. 그 당시를 나는 가슴 아프게 기억한다. 당시 사범대 학생회는 혼란스러웠다. 교원임용고시 제도를 처음에는 국가가 교원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보고 거부했지만, 결국 교육의 전문직화 주장이 설득력을 발휘해 소위 운동권에서도 이를 찬성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주류가 되었다. 나는 밥그릇의 승리라고 자조했다. 그 뒤 교사가 되기 위한 경쟁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평생 경쟁의 방식으로 자라고 그렇게 교사가 된 사람들이 어떻게 경쟁에 저항하겠는가? 점차 진보적인 교사조차 교사 자격증의 기준으로 임용고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의 절차를 통과하지 못한 교사는 자격부족의 교사로 보는 내부 차별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97년 IMF를 겪으며 소위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미화된 비정규직의 일반화로 기간제교사가 제도로 굳어지면서 이런 의식도 심화되었다. 엉터리없는 현상이 학교문화가 되었다. 때문에 2017년 기간제교사의 정규직전환 문제에 대한 전교조의 입장에 대해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대학시절 야학활동을 하고, 대안학교에서 일을 하며 교사 자격증은커녕 사범대를 나오지도 않는 시민으로서의 교사들로부터 더 많이 배웠다. 오히려 교사자격증에 갇힌 교사들의 전문주의를 더욱 편협하고 갑갑하게 느꼈다. 그것을 학교를 둘러싼 교육 이데올로기와 허위의식의 주범으로 더욱 더 예민하게 느끼고 있다. 정규직 교사를 때려 치고 비정규직 교사로 전전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 자격증이 조장되는 사회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결국 배타적 차별을 전제로 하는 테크노크라트 사회는 계급사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말이 길어졌지만, 그레타 툰베리와 조슈아 웡의 10대들을 통해 내가 배우고 상기한 것은 어떤 신분과 자격보다 중요한 것이 인간 그 자체라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을 자꾸 학생으로 폄훼하려 하지만 그들은 인간으로 이 세계에 참여한 것이다. 사람들이 그레타 툰베리와 조슈아 웡에 열광하는 것도 바로 인간의 순수한 분노 때문이다. 인간인 이상 어린이도 누구도 이 세계에 참여할 수 있다. 학생이어서 안 되는 일은 없다. 학생과 같은 유사 신분제도로 그것을 가로막게 해서는 안 된다. 나이와 직업에 상관없이 끊임없이 인간이 깨어나고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이참에 학교를 모두 거부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는 것은 인간 주체가 스스로 배우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의 평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크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에서 인간 모두가 가진 가능성인 능력의 평등을 강변했다. 민주주의 원리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인간이기에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나는 무지한 교사다. 사실 교사자격증은 있지만 임용고시를 통과한 교사가 아니다. 임용고시를 보면 당연히 떨어질 것이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잘 틀린다. 그렇지만 부끄럽지 않다. 오직 인간의 주체와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벌거벗은 인간이 좋다. 제도란 그것을 돕는 것이어야지 그것을 통제하는 것이 되면 안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사자 법칙이 작동한다.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로 민주주의는 작동한다. 국가가 전문가가 무엇을 해주기 바라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생각들이다. 오히려 국가와 전문가들이 인간을 위한 민주주의를 위해 제대로 작동하는지 관여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책임이다. 학교와 교육제도에 대해 질문해보자. 정당한 경쟁 신화는 과연 정당한가? 그것이 인간의 주체와 삶에 기여하는가 아니면 권력과 계급에 기여하는가? 미안하지만 학교는 필수가 아니다.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을 국가는 지지하고 보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만약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간다면.
코로나19와 학교
글: 심규한
이 글은 개벽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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